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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BR><BR><BR>우리 아버지들은 현해탄을 건너다가 이렇게 많이 죽으셨습니다<BR> 그러나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우끼시마호 외는 인정을 않했습니다<BR>오늘 이 뉴스를 보고 가슴이 벅차 이 글을 올립니다<BR><BR>진실의 시효는 없는 것입니다<BR> <P> </P> <P> </P> <P> </P> <P> </P> <P>귀국길 해난' 강제징용 조선인 유골 첫 확인 </P> <P class="date"> <P><BR><BR></P> 정부조사로 60년만에…246명 실종 미쓰비시 징용공도 <BR>진상규명위 "日정부와 국내봉환 논의중" <BR>(서울=연합뉴스) 김연정 기자 =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8.15 광복을 맞아 배로 고국으로 귀환하던 중 조난사고로 억울하게 숨진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처음으로 확인됐다. <BR><BR>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"일본 히로시마의 미쓰비시 공장에 강제 동원됐다가 귀국 중 해난사고로 숨진 징용자를 비롯한 조선인 유골 131위가 일본 사이타마현의 사찰인 곤조인(金承院)에 안치된 사실을 확인했다"고 5일 밝혔다. <BR><BR> <P class="ph"><IMG alt="" src="http://photo-media.daum-img.net/201002/05/yonhap/20100205054403938.jpg" width="228"></P>1945년 9월 히로시마 미쓰비시의 조선인 징용자들은 원자폭탄 재앙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민간 기범선(동력기관과 돛을 함께 갖춘 작은 배)을 타고 귀국하던 도중 태풍을 만나 246명이 전원 실종됐다. '히로시마 미쓰비시 징용공 실종사건'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실종자들의 유골을 찾지 못해 수수께끼로 남을 뻔했으나 60년 만에 정부 조사로 사고의 실체가 일부나마 드러나게 됐다. <BR><BR>사이타마현 곤조인에는 그동안 1976년 이키섬에서 일본 시민단체가 발굴한 유골과 1983년 후생성ㆍ외무성이 쓰시마에서 발굴한 유골이 조선인의 것이라고만 파악된 채 신원 미상으로 30년 가까이 보관됐다. <BR><BR>2005년부터 시작된 이번 조사 결과 여기 보관된 유골들은 각종 해난 사고로 숨진 조선인들의 것이며, 이 중에는 '미쓰비시 실종 사건' 희생자들 것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. <BR><BR>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은 광복 직후인 1945년 8∼10월 서둘러 귀국하려 했으나 당시 일본이 수송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아 대다수가 '똑딱선' 등의 작고 낡은 배를 탔고, 기상 악화마저 겹쳐 해난 사고 피해가 속출했다. <BR><BR>진상규명위 오일환 전문위원은 "이번 조사에서 일본 정부나 기업들이 조선인들이 안전하게 귀환토록 할 의무가 있는데도 결과적으로 이들을 방치해 귀환 도중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"고 말했다. <BR><BR>그는 "해당 유골을 강제동원 도중 숨진 다른 조선인 유해와 함께 국내로 봉환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"고 전했다. <BR><BR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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